안녕하세요.. 여기는 국외 베이시스트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이곳 저곳 찾아 다녔는데 정보가 없네요.. 베이스 연주자에 대한 짤막한 기사라도 여기에 올리려고 합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올리겠습니다.. 도우실수 있는 분은 도와주세요..  


 
Jaco Pastorius ||   Marcus Miller ||  Jack Bruce ||  Stanley Clarke ||  John Patitucci ||  John Myung ||  Abraham Laboriel ||  Billy Sheehan ||  Sting ||  Stuart Hamm ||  Victor wooten ||  Will Lee ||  보노 ||  Les Claypool ||  Nathan East ||  FLEA(RHCP) ||  Tony Levin ||  James Jamerson ||  TOTO ||  Cliff Burton ||  ChrisSquire ||  Victor Bailey ||  JohnPaulJones || 
 


Jaco Pastorius  (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

재즈 퓨전 베이시스트로 35년의 짧은 생을 음악에 불태우고 살다간 천재 자코 파스토리우스는 탁월한 감성의 뮤지션이었다. 
그의 핑거링은 오늘날 베이스 연주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그가 남긴 3장의 솔로앨범은 베이스의 교과서로 불리우고 있다.

그는 1951년 12월 1일 펜실베니아주 노리스 타운에서 존 펜시스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그는 드러머겸 가수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8세때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15세 때에 베이스로 전향했다. 
프로리다의 리듬앤 블루스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참가하면서 프로세계에 발을 디딘 그는 20세 때인 71년에 아이라 설리반과 공연하였다.

74년 그는 당시 무명이었던 기타리스트 팻 매스니오, 폴 브레이(피아노), 
브루스 디트마스(드럼)등과 함께 첫 솔로 앨범 Jaco Pastorius를 IAI 레이블에서 발표하였다. 
하모닉스와 리듬감각이 빛을 발한 이 앨범으로 자코는 재즈 베이시스트의 신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75년에 그는 팻 메스니가 데뷔앨범 Bright Size Life를 레코딩하자 세션으로 참여해 주었고, 마이애미 대학의 강사로 교단에 서기도 했다. 
당시 그곳을 방문한 조 자비눌에게 발탁되어 76년 1월 그가 이끌던 퓨전재즈 그룹 웨더 리포트에 가입하였다.

이어 그는 웨더 리포트의 앨범 Heavy Weather. 조니 미첼의 Don Juan's Reckless Daughter. 아리 메올라의 앨범 등에 참여하는 열정을 보였다. 
또한 알버트 멘겔스도프, 알폰스 모우존 과 트리오로 실황앨범 Trilogue-Live를 발표하여 전성기를 누렸다.

80년 두 번째 솔로 앨범 Word Of Mouth를 발표해 웨더 리포트 시절 멤버로서 표현하지 못했던 통합적인 음악성을 전개하였다. 
수록곡중 마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를 편곡한 (반음계적 환상곡)과 비틀즈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BlackBird)를 히트시켰다.


이 시기에 그는 재즈 포인트 레이블에서 Honestly, Live In Italy를 발표하였으며, 브라이언 멜빈과 함께 레코딩한 Jazz Street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멜빈 사후에 타임레스 레코드사에서 1987년에 발매되었다.
그러나 서서히 이상한 버슷을 보이기 시작한 그는 85년 에 부친의 집에 침입하려다 
체포되었으며, 86년에는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87년 9월 21일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딜의 포워드 제너럴 메디컬 센터에서 구타에 따른 뇌혈관 파열로 세상과 등졌다.

참고- 재즈 아티스트 대사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인 자코 파스토리우스는 감각이나 테크닉 등 모든 면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명연들을 무수히 많이 남기고 사라졌다.
그 중에서도 하모닉스 주법이나 16분음을 타는 가운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빠르고 정확한 프레이즈, 리듬감 등은 수많은 베이시스트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이미 70년대부터 많은 세션 활동을 했고 말엽엔 웨더 리포트라는 재즈록 밴드에 가입해 베이스의 신경지를 개척하는 많은 라인을 펼쳤으며 
이외에 솔로 앨범을 통해 최고 수준의 베이스 프레이즈를 선보였다. 
그의 앨범은 (특히 Jaco Pastorious)는 마커스 밀러나 알퐁스 존슨 등을 비롯한 당대의 명베이스 주자들은 물론 그 외의 (아마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까지 )사람들에게 베이스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게 했고 나아가서는 인생의 지침으로 자리하기까지한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Naruse
많은 사람들이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라고 한다. 물론 어려운 음악이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밴드의 음악은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듣기에 매우 좋다. 어려운 음악이라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니까.

이들이 추구하는 장르는 Fusion Jazz이다. 
정확히 말해 'Jazz Rock Fusion'인 이장르는 1969년 마일즈 데이비스의 In a silent way 와 이듬 해 Bitches brew 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정통 재즈만을 고집하는 몇 뮤지션을 제외하곤 우리귀에 익숙한 뮤지션들은 모두 퓨전재즈의 계열이라 할 수 있다. 
퓨전재즈의 좋은점은 단순히 어느 한 장르에만 국한하지 않고 Cross over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좋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방의 귀재들'인 일본인들이 이런 퓨전 재즈를 나름대로 그들의 음악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 바로 카시오페아이다. 
이들말고도 일본에는 이들의 숙명의 라이벌인 'T-Square'와 Jimsaku, Paradox, Prism등이 Japanese Fusion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보통의 재즈가 자유로운Improvization 즉 즉흥연주를 중요시하는 데 반해, 
이 일본 퓨전의 특징이라면 즉흥연주보다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전개 속에서 깔끔하게 연주하는 데 있다. 
깔끔한 음식이나 깔끔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류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CASIOPEA'는 생소한 이름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TV만 집에 있다면 카시오페아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면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이나 방송 중간중간 BGM 등에 사용되는 음악 중 뻥 안치고 90%이상이 그들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올 해로 결성 22년을 맞는 그들은 통산 30개의 앨범(94년 베스트 앨범포함)을 발표했다. 
말이 30개지 사십을 넘은 그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정말 왕성한 창작력을 짐작케 한다.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Issei Noro는 76년에 일본 굴지의 악기회사인 야마하가 주최하는 콘테스트에서 
최우수 기타리스트 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Yamaha선 그를 위해 그의 이름을 빌린 기타모델도 제작한 바 있다.) 77년도에 카시오페아를 결성했다. 
카시오페아의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하는 그는 키보디스트인 Minoru Mukaiya와 함께 지금까지도 카시오페아를 이끌고 있다.
미노루 무까이야는 언변이 아주 뛰어나다. 
라이브에서 지루하지 않게 분위기를 이끄는 멘트도 곧잘 던지는데 이런 뛰어난 언변 못지 않게 연주 실력도 절대 이에 뒤지지 않는다.

현재 이 그룹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사람은 Yashihiro Naruse이다. 
우리 나라의 베이시스트계의 전설인(?) '울고싶어라 ' 의 이남이씨와 외모에서 매우 흡사한 이 사람의 베이스 실력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연주력이 훌륭하기로 소문난 일본의 뮤지션 사이에서도 그의 베이스 슬랩 테크닉은 칭송받고 있다.
애석하게도 92년 가입했던 70년 생의 젊은 드러머 노리야키 구마가이가 탈퇴한 후 드러머 자리가 아직 공석으로 남이 있다. 
이후 앨범 Light and Shadows 와 Be 의 녹음 세션에는 80년대 카시오페아 전성기시에 멤버로 활동했던 천재드러머 'Akira Jmbo'가 참여하고 있다. 
아키라 짐보는 현재 그룹 'Jimsaku'에서 활발한 활동 중이다.

1977년 이세이 노로와 Tetsuo Sakurai에 의해 결성된 이들은 당시 최고의 퓨전그룹인 'The Spuarre'(현 T-square)를 능가하는 밴드를 찾기에 혈안이 
된 Alfa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79년 첫 앨범을 발표한다. 
이들의 데뷔앨범은 당시의 변화하던 일본재즈계에 파란을 몰고 오게 되었고, 이어 발표한 2집의 성공으로 크게 고무되었다. 
그 후 새로운 드러머인 아키라 짐보의 영입으로 카시오페아는 음악적으로 진일보하였으며 계속되는 앨범의 발표로 빌보드 재즈 차트 탑10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된다.

어느덧 그룹결성 10주년을 맞이 한 86년에 'John Waite'의 게스트 보컬이 참여한 10주년 기념앨범인 Sun Sun 을 발표한 카시오페아는 
퓨전이라는 장르에 기류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얻어내게 된다. 
소속 레코드사를 Polydor로 옮긴 이들은 88년 7월부터 브라질을 시작으로 2달여의 월드 투어를 갖게 된다. 
이 후 약 1년여의 공백 기간동안 솔로앨범 작업 등 밴드 외적인 활동을 하던 이들은 이 기간 중 테츠오와 아끼라가 탈퇴하는 불운을 겪는다. 
다시 명베이시스트 야시히로 나루세로 전열을 다듬은 카시오페아는 92년 젊은 드러머를 영입해 보다 많은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 후 후기작품들을 통해 다양한실험정신을 표출하고 있다.

카시오페아는 스스로의 음악에 대해 항상 진보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들 음악의 저변에 깔린 기본적 성향은 변함없으나 그들의 말대로 항상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로써 팬들을 만족시킨다.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특히 빠른 템포의 곡) 조그마한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함 그 자체이다. 
계속해서 리듬과 코드를 바꿔나가며 심지어는 즉흥연주 시에도 과연 이것이 즉흥적인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환상적이다. 
Casiopea는 서구의 다른 퓨전 밴드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감흥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에겐 일본이라면 무조건 배격하는 성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카시오페아는 96년에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말도 안되는 공연도 국내에서 행한 바 있다. 
일본밴드의 국내 공연 금지라는 당국의 조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문화개방의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아니 일본문화 수입금지의 상황이라 해도 카시오페아 같은 훌륭한 밴드의  공연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공연이 자주 이루어질 때 우리의 음악계도 발전할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Kirk 의 카시오페아 기사중에서 발췌..kirk.cine.co.kr
Jazz Bassist
퓨전 재즈 씬에서는 스탠리 클락이 발 빠르게 진출하였으나 워낙 수일한 천재 베이시스트 쟈코 패스트리어스의 실력에는 미약한 듯 보였다. 
그러나 자코의 죽음 이후에는 확고 부동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어쿠스틱 베이스와 일렉트릭 베이스를 병행해서 연주하고 있다. 
쟈코 패스트리어스의 졈피한 연주는 팬들을 즐겁게 하기에 각별하였으며, 한때 결성하였던 빅 밴드로 많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미로슬라프 비토우스느 칙 코리아와 오랜 교분을 유지하며 연주력을 향상시킨 아티스트로, 상당히 진보적인 컨셉트를 갖고 있는 매력적인 베이시스트다. 
북구적인, 특히 덴마크인들의 안정된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닐스 헤닝 윌스테드 페데르센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너무나 중량감있는 실력의 보유자다. 
특히 케니 드류 트리오와 데스터 고든 쿼텟등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감탄을 연발하게 만든다. 

그는 애향심이 남 달라 자기 이름에도 욀스테드라는 고향의 지명을 사용할 정도이다. 
버클리 음악원 출신의 죠지 므라치도 이에 뒤질 수 없다. 
그는 농무 자욱한 분위기를 표방하고,체코슬로바키아 출신다운 지적이고 감수성 예민한 연주를 자랑했다. 
디지 길레스피 악단과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에서 실력을 연마하였고, 그 후에도 토미 플래너건, 롤랜드 해너 반드에서 맹렬히 활약한 바 있는 베이스 계의 중진이다. 

뉴 스탠다드파의 기수로서는 챠네트 모펫트가 출중하다. 오네트 콜맨 트리오 출신의 드러머인 챨스 모펫트의 친아들로, 학구적이고 노력하는 타입의 베이시스트로 정평이 나 있다. 정도를 걷는 어쿠스틱 베이시스트로는 오랜만에 나타난 인물이지만, 재즈계의 소문난 터프가이로 알려져 있다. 이에 버금가는 실력가 로니 플랙시코나 아이라 콜맨도 지나쳐 가기에는 섭섭한 장래가 기대되는 베이스 플레이어이다. 강력한 연주를 보여 주는 챨즈 팸브로우, 신세대 워킹 베이시스트 밥 헐스트를 이어서 현재 재즈 씬에서 가장 각광 받는 존재인 크리스챤 맥 블레이드는 일찌감치 자신의 장래를 약속 받았다. 헤이 브라운의 직계 혈통으로 준주한 세션과 콘서트를 연속하고 있으며, 베이스 월드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최고의 기대주이다. 나름대로의 컨셉트와 에모션을 갖추고 있으면서, 롬 카터 풍의 플레이를 하고 있는 제임스 지너스, 윈튼 마샬리스 밴드 출신의 대형 베이시스트 레지널드 빌 또한 세인의 시선을 모으는 떠오르는 별이다. 지난 96년 5월 11일 내한하여 세종문화회간 대강당에서 펼쳐진 트리플 피아노 트리오와, 루 도널드슨의 조인트 콘서트로 우리나라 팬들에게 선보인 재키 테라슨 트리오의 우고나 오케그와 또한 빼어난 감각과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베이시스트이다. 클락 테리, 베니 골슨, 죠셉 져먼 등의 거장들과 협연한 바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기량과 비트감 모두 훌륭하며, 연주 스타일은 챨스 밍거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한편 현존하는 비 밥 피아노의 거장 토미 플래너건 트리오에서 잔잔한 테크닉과 풍부한 베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피터 워싱턴은 샌프란시스코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뮤지션이다. 웨스트 코스트의 거장 죤 핸디, 바비 혀쳐슨, 해롤드 랜드 , 프랭크 모건, 어네스트 엔더슨, 어니 앤드루스, 크리스 코너 등의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충분한 실력을 쌓았다. 86년 초에는 너무나 유명한 아트 블레이키 얀드 더 재즈 메신져스에 입단하여, 2년여 동ㅎ안 활동하며 뉴욕 무대로 진출했다. 이후 프리랜서 주자로 이스트코스트의 명인들과의 호흡에 땀을 흘리다가, 최근에는 코미 플래너건의 레규러 멤버로, 카네기 홀 재즈밴드의 멤버로 훌륭한 연주를 들려 주고 있다. 이제 일렉트릭 베이스의 계보를 간략하게 알아보자, 미로 슬라프 비토우스의 간접 영향을 받고, 자기의 연주 세계를 구축한 불세출의 베이시스트 쟈코 패스트리어스는 전술한 바 있다. 그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빅터 베일리가 웨더 리포트에서 죠 쟈비눌과 웨인 쇼터와 맹연주를 할 때는, 마치 쟈코 생전의 웨더 리포트 사운드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테크니컬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또 마일즈 데이비스 패밀리 출신으로, 마일즈가 죽기전까지 신뢰를 보내 온 대릴 죤스는 냉철하고 고급스러운 연주를 보여 주었다. 무척 차분하고 지성적인 베이스 라인을 소유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칙 코리아의 일렉트릭 밴드와 어쿠스틱 밴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위칭 베이시스트 죤 패티투치는 근래 보기 드문 강력한 사운드와 정교한 비트감이 주무기고, 생기 발랄한 플레이를 제공하고 잇다. 어쿠스틱에서도 만만치 않은 연주력을 발휘하고 있어 장차 큰 재목으로 기대해 본다. 역시 마일즈 패밀리 출신의 마커스 밀러는 현재 일렉트릭 베이스 씬을 대표하는 초 일류급 거물이다. 빼어난 기량으로 제이비드 샌본과 오랬동안 교감을 나누어 왔으며, 베이스, 클라리넷, 신디사이져등을 연주하는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자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계속되는 세션 요청으로 퓨전 재즈 씬에서 제일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다재다능한 아치스트이다. Record Forum 중에서 이글은 재즈 사이트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