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US MILLER
(마커스 밀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정받고 있는 베이스 연주자이다.) 


  1959년 6월 14일 뉴욕 브룩클린에서 출생하였다. 고전음악에서  성가에  이르기  까지 모든 음악을 섭렵한 오르간주자였던  부친의  음악을 교회에서  듣는 것으로  시작된 그의 음악에의  입문은  10세에는 그의 관심을  클라리넷으로  이끌었다. 재즈에  맛을 들이게 된 것은 그이 사촌때이며 우리에겐 마일즈와의  협연으로  알려진 윈튼켈리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였고 ,  곧 대중음악이 그의  흥미를 끌기 시작하여 쿨앤더갱 ,  스티비원더,잭슨파이브와  아이작헤이즈등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이후 지방밴드의 클라리넷 주자로 합세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그는 색스폰과  오르간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13세때  유니복스 세미  할로우 바디를 구입하여  베이스 연주를 시작한다. (그는 그후 펜더 재즈 베이스로  연주를 한다.)

 베이스의 연주에 있어 그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베이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은 들은 적이 있을듯한 전설적인 베이스  연주자 자코  패스트리우스 (Jaco Pastorius) 와 스탠리 클락(Stanley Clarke)  이었다.
 "2년간 나는 자코의 앨범"Jaco Pastrious"를 들으며 음표 하나 하나를 연습했습니다.
그러나 내겐 진정한 하모니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음표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 없었습니다. 자코의 연주와 작곡은 내겐 마치 긴 잠을 깨워준 자명종과도 같았죠. 그것은 내게 비밥을 공부하게끔 만들었고 마침내 나는 나의 하모니를 파악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

그는 그의 소질을 인정받아 명문예술 고등학교와 퀸스칼리지(Queen's College)에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레코딩을 프루티스트 바비 험프리와 함께 한데 이어 동료인 레니 화이트와 연주여행을 떠난다.
1981년 그는 그의 음악의 아버지와도 같은 마일즈 데이비스를 만난다.
밀러의 세션경력을 항상 높이 평가해오던 그는 CBS 스튜디오에서 잠깐 동안의 연주를 듣고 밀러를 자신의 밴드에 참가시켰다. 함께 연주를 하면서 점차 성장해 가는 동안 그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밀러의 손에 맡긴다.
마일즈와 함께 만든 앨범 "The Man With The Horn"에서 다져진 스타일은 그에게 자립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마일즈를 떠나 밀러는 과거의 샌본과의 만남이 이어준 로버타 플랙, 프랭크 시나트라 등과 더불어 백업싱어인 루서 밴드로스를 만나 분주한 세션과 제작활동을 벌인다. 86년 다시 만난 마일즈의 앨범 "Tutu"에서 밀러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준다.

촉망받는 베이시스트, 프로듀서,작곡가,편곡자로서 그리고 팝,펑크,재즈필드에서의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로서 밀러는 자메이카 보이즈와의 두장의 앨범을 비롯, 마일즈 데이비스의 87년작 "Siesta" 데이비드샌본의 'Upfront"에 이르는 제작경력을 지속했다.
최근 그는 스파이크 리의 영화 "School Daze" 에디머피가 나오는 "부메랑"의 음악, 등 영화음악에도 작업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12년전 21세의 나이 어린 스튜디오 베이시스트였던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젊은이들 중에는 아직도 스튜디오 베이시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경우에는 무척 운이 좋은 편이지요. 하지만 제가 이처럼 빨리 지금의 위치에까지 왔다는 건 지금도 어딘가에 제가 더 나아갈만한 곳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Eleven years ago, Marcus Miller- then a 21-year-old studio-bass phenom-told an interviewer: "I know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would love to be studio bassists, and I'm very fortunate. But for it to happen so fast lets me know there must be some place further to go." Prophetic words.

Since then, Miller has gone from being a much-sought after producer, composer, arranger, and multi-instrumentalist in the pop, R&B, funk, and jazz fields. Best known for his chart-topping collaborations with saxophonist David Sanborn, vocalist Luther Vandross, and legendary bandleader Miles Davis, Miller´s additional credits range from the Queen of Soul (Aretha Franklin) to the Chairman of the Board (Frank Sinatra).

In between, Marcus has managed to sustain a solo career that includes two solo albums plus a pair by the Jamaica Boys, which he co-leads.

And his recent foray into film music includes tracks for Spike Lee´s School Daze and Kid ´N Play´s House Party, as well as scores for Siesta (featuring Miles Davis) and Eddie Murphy´s latest, Boomerang.

 Although Miller´s recent work might indicate a permanent move toward studio mogul-dom, a la Prince or Quincy Jones, there's good news for us bass players. Marcus recently completed a third solo album, The Sun Don't Lie, and the ten tracks are brimming with fretted and fretless bass magic. Dedicated to the memory of Miles Davis, who died while the music was being recorded, The Sun Don't Lie features an impressive supporting cast that includes Miles, saxophonists Wayne Shorter and David Sanborn, guitarists Vernon Reid and Jonathan Butler, keyboardist Joe Sample, and drummer Tony Williams. Although Miller was still negotiating with record companies as we went to press, he says the album should be released this fall.

 Marcus Miller was born on June 14, 1959, in Brooklyn and raised in Rochdale Village, in the Jamaica section of Queens, New York. His initial enchantment with music began in church, where his father, an organist, performed everything from classical music to gospel. Marcus acquired a taste for jazz as well, after hearing Wynton Kelly, a second cousin, play the piano. (Kelly is best known, interestingly, for his work with Miles Davis.) Inspired by what he heard, Marcus began singing, and then, at age ten, he took up the clarinet. Soon after, the pop sounds of such artists as Kool & the Gang, Stevie Wonder, The Jackson 5, and Isaac Hayes started to draw his attention. With little chance of getting into a local band as a clarinetist, he tried saxophone and organ before latching onto the bass at age 13. With help from his parents, he bought a semi-hollowbody Univox bass before moving on to his first Fender Jazz Bass.

 While it was his aptitude on clarinet that gained him entry into New York City's prestigious High School of Music & Art and then Queens College, it was Miller's attitude on bass that landed him his first pro gigs with such local talent as Harlem River Drive and keyboardist Lonnie Liston Smith. Still a teenager, he made his first recording with flutist Bobbi Humphrey (Individuals, Columbia) and went on the road with a fellow "Jamaica boy," drummer Lermy White. When Marcus returned, drummer Buddy Williams (his section-mate in Humphrey's band), got him an audition for the Saturday Night Live band. There he met Sanborn, who integrated the bassist into his Voyeur album and subsequent tours. Miller soon began to get calls for jingle and record dates, and he also joined Roberta Flack's band, where he met a backup singer named Luther Vandross. By the time Miles Davis called in 1981, the music world seemed to be unanimously acknowledging that it was, indeed, Miller Time.

마커스 밀러는 발라드나 무드 음악적인 성격의 장르에 까지 초퍼를 이용함으로써 테크니컬 베이스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The Sun Don't Lie를 들으면 위의 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타카토와 테누토 등을 이용해 프레이즈의 완급을 조정한다던가, 저음부에서 글리산도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착 달라붙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연주도 그에게서 자주 볼 수 있다.. 때론 마치 속삭이듯 또 때론 미끄러지며 애무하듯 부드럽게 춤을 추면서 한편의 영상시를 그려내는게 그의 베이스의 스타일이다.

정박과 엇박이 숨쉴 틈없게 교차하는 연주에서도 타이트한 리듬 워크를 행하고, 블루 노트 스케일에서의 약간 침울하고 우수어린 라인을 연주하다가도 금새 퍼커시브 프레이즈로 쏜살같이 전환할 때에도, 교체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게 어프로치를 바꾼다. 마커스는 색다른 연주와 음색의 질감을 위해 신서베이스와 현 베이스를 함께 연주 녹음하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현  베이스가 신서 베이스의 음에 묻히지 않게 하기위해 현 베이스를 반드시 초퍼로 연주한다.  

 다음은 밀러가 " The Sun Don't Lie"를 발매한후 가진 인터뷰중에서 발췌한 것으로

밀러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빌며 여기 수록한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베이스 연주자는 누구인가 ?

- 로버트 "쿨"벨, 제임스 제머슨 , 로코 프레스티아, 잭슨가 사람들, 특히 저매인, 폴, 앤소니.
나는 래리 그래함을 통해 스래핑(Slapping- 우리가 말하는 초퍼)의 세계에 입문했는데 내 이웃중에서 , 만약 래리처럼 연주하지 못한다면, 아마 베이스를 그만둬야 할 정도였다.
고등학교시절에 우린 어느 한 카페의 조그만 무대에서 여학생들을 꼬시려고 Slap을 경쟁하기도 하였다. 퓨전 음악이 히트를 치면서 나의 흥미를 끌었을 때, 난 운좋게도 케니 워싱턴이라는 드러머를 알고 있었던 차였고 그는 나를 앉혀 놓고는 재즈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곤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폴 챔버스, 샘 존스, 론 카터 , 에디 고메즈 같은 연주자에게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자코(Jaco Pastorius)가 나타나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난 그의 첫 앨범(Jaco Pastorius)에 수록된 곡 하나하나를 옮겨 적을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화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이는 그 노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이때 자코의 연주와 글은 마치 날 깨우는 자명종 소리와 같았다.
결국 이를 계기로 난 비밥을 공부했고 화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곡을 쓰게 되었나 ?

- 내 사촌인 댄질 밀러는 나와 그가 속해있던 지방 밴드인 Harlem River Drive를 위해 곡을 쓰곤 했는데 , 그것을 보면서 난 음악가로서 자신만의 곡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완벽한 음악가가 될수 없다고 생각했다. 후에 SNL(Saturday Night Live)밴드를 통해 샌본을 만났을 때 , 난 내가 만든 몇 개의 휴전 곡 데모를 주었는데 그는 그 곡들을 녹음하자고 했다.
그리고 얼마후에, 나는 루더 밴드로스와 함께 보컬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아티스트들을 위해 곡을 쓸때면 항상 그 아티스트의 얼굴을 마음속에서 그려보려고 노력한다. 만약 그를 음악으로 그려낼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그에게 맞는 음악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정확한 모습을 얻기가 어려우므로 앨범에 수록될 내 곡들에 대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마일즈 데이비스와 관계에 대해 어떻게 말할수 있는가?

-나에게 있어서 마일즈 데이비스는 내 음악의 아버지와도 같다. 1980년에 나는 그를위한 세션에서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때 그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1년후 , 나는"마일즈에게 전화하라"고 적힌 쪽지를 받았다. 그는 전화를 받아서는 한시간내로 CBS 스튜디오에서 만나자고 했고 나는 가서 내 자신을 소개한후 별말없이 연주를 했다. 연주를 끝냈을 때, 그는 그의 밴드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했다. 밴드 생활의 초기부터, 그는 나를 곤란하게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내게 힘이 되었고 나의 세션 경력을 자랑 스러워했다. 결국 우린 음악적으로 함께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고, 그는 모든 프로젝트를 나에게 맡겼다. 이것은 나에게 상상도 못할정도로 아찔한 일이 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격려가 되는 일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내 베이스 스타일은 " The Man With The Horn" 앨범을 통해 다져졌고, 내 작곡력은 "Tutu"앨범을 통해 한걸음 진보했다고 말할수 있겠다.

슬래퍼(Slapper)로서 당신은 맑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또한 엄지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는 연주할 때, 네크의 아래 부분이 아니라, 픽업의 바로 앞을 튕긴다. 또 어떤땐 전혀 플럭을 안핼 때도 있다. 왜냐면, 엄지 손가락을 이용한 연주가 조그만 텔레비젼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베이스 연주를 듣는데는 최고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두 개의 손가락을 번갈아 사용한다면 , 항상 강한음 뒤에는 약한 음이 따라 나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엄지 손가락으로 연주를 계속한다면, 모든음이 고르게 강하게 표현된다. 이것을 특히, 내가 키보드에 입력된 베이스 파트를 따라 연주를 할 때 매우 중요하다. 내가 과연 엄지 손가락만으로 전체를 다 연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일종의 도전을 하는셈이다.
여전히 나는 "Teentown"에서 처럼,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플럭(Pluck)을 더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연주자들이 이것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플럭 연주는 엑센트일 뿐이고, 결국 이런의미에서 펑크는 엄지 손가락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보통 펑키 재즈에서의 펑키한 분위기는 플럭연주 즉,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 악센트를 주는 연주에서 얻어진다고 하겠는데 이런 효과는 엄지 손가락을 사용한 연주에서 가장 크게 나타나므로 펑키한 연주는 엄지 손가락으로 하는 플럭연주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당신의 왼손 주법에 대해 ...?

- 4줄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수없이 많은 손위치의 변화를 요구한다. 운이 좋게도 비밥에 대해 공부한 것이 이점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난 기본적으로 한 개의 프렛당 한 개의 손가락을 할애한다. 프렛이 없는 악기를 연주할 때에는 악기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한 개의 악기로만 연주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손가락으로 눌러 주어야 하는 부분이 네크 상에 어디인가를 찾아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귀로 듣고 많은 시간을 그것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 연주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그루브(Groove)연주에 대해 강조를 하는가 ?

-아니다. 어린 연주자들에게 그루브 연주를 해야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화강에게 파란색만을 써야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초보자들이 어떤 연주던지 가리지 않고 하도록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그것이 바로 그들이 최선을 다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이를 먹었을 때서야 비로소, 만약 그들이 베이스 연주자로서의 역할을 배운다면 더 많은 기회가 주어 질 수 있다는 음악 비즈니스의 현실을 말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한 많이 듣는 것이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연주자의 귀는 자연히 솔로 베이시스트의 연주로 기울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루브 연주자의 연주에 익숙하게 되면, 역시 그 속에 갖히게 되고야 말 것이다.

언젠가 마커스 밀러가 어떻게 그 많은 유명한 프로젝트들에 참여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음 그것은 자신의 악기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데서 오는 것 같다. 연습하고, 계속해서 배우며 변화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이런 멋진 프로젝트들에 참여할 기회들이 찾아들 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