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베일리(Victor Bailey) 1960~

공간적인 제약으로 당신은 몇가지 사실만을 알수가 있다.
당신이 글을 보고 있는 이곳은 나 스스로가 글을 쓴 웹사이트이다.

 
나는 1960년 3.27일 태어났다.
나는 음악이 끊이지 않는 가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Morris Bailey Jr 는 작공,편곡,프로듀서,색스폰 연주자이자선생님이었다.
60,70,80년대에 아버지의 곡은 당대 최고의 R&B 아티스트
(Patti LaBelle, The Stylistics, Blue Magic, The Spinners, Harold Melvin and the Blue Notes and international artist Nina Simone)들에 의해서 레코딩되었다.

색스폰연주자로 아버지는 McCoy Tyner, Jimmy Smith, Lee Morgan and Reggie Workman 같은 재주연주자들과 같이 연주하였다.
나의 삼촌인 Donald Bailey는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이다.
아마도 jazz organist Jimmy Smith 트리오의 드러머로 잘 알려져 있다.
나의 누이인 Brenda 는 디스코 그룹 Creme D'Cocoa 에서 히트송을 불렀다.
나의 형제인 Morris 는 단 하루도 연습한적이 없지만 그는 작사,노래, 그리고 어느 악기든 연주한다.
나의 어머니 Vera는 놀라운 가창력을 가졌지만 그녀는 직업으로서의 음악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음악과 관련한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언젠가 아버지와 삼촌 Donald 가 젊었을적에 그들은 집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Morris 가 갑자기 계단을 내려와서 삼촌으로부터 드림스틱을 빼았아서 믿어지지 않는 
드럼연주를 하였다. 그후로 할아버지는 어떻게 된일인지 , 왜 그는 그렇게 믿기어려운 드럼연주를 했는지말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가족들은 그의 이름이 하단에 적힌 드럼셑과 함께 있는 할아버지 사진을 발견했다.
쇼 비즈니스 사진이었다. 할아버지는 분명히 프로연주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였는지는 아무로 알지 못했다.

우리 집은 싱어,뮤지션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매일 음악으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태어날때부터 나는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고 내가 들은적이 있는 악기는 연주할 수 있는 자연적인 재능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7살 때 나는 Philadelphia's South Broad Street에 있는 아버지의 사무실에 있었다.

아버지는 소파에 잠들어 있었고 나는 피아노에 앉아서 Bill Withers 의 히트송 "Lean On Me" 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 누가 연주하는거야? “ 라며 돌아보았고 , 아버지는 연주하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너 그거 어떻게 연주하는줄 아니? “ 나는 말했다. “I don’t know “ 난 단지 연주했을 뿐이다.
그후로 나는 아버지가 가는곳은 어디든 따라갔다.
 
나는 방과후와 주말에는 스튜디오나 재즈연주를 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당시 유명한 R&B 아티스트인 The Stylistics, or Kenny Gamble and Leon Huff 를 보았었다.
또한 나는 필라델피아의 전설적인 재즈 연주자인 Odean Pope, Eddie Green and Tyrone Brown 들을 볼 수 있었다.

10살 때 나는 드럼을 연주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때 드럼섿을 얻었다.
드럼세팅을 하고 나는 즉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의 어머니는 “ 너 어떻게 그걸 연주할줄아니? “ 라고 물으셨고, 난 단지 “ I don’t know” 라고 말했다.
그냥 연주하는거여요. 일주일후 나는 나의 첫번째 밴드에 조인했다. 3,4주 후에는 첫번째 연주회를 하였다.
3달후 나는 내 생애 첫번째 레코딩세션을 하였다.
그후로 나는 쉬지않고 연주를 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인 베이스 연주로의 전환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나는 드럼연주로 동네 이웃 아이들과 밴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이스 연주자가 내가 너무 진지하다고 나와 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어린 아이가 그들이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를 말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밴드를 그만두었다.
 
주변에 있는 남은 아이는 드럼 연주자였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 내가 베이스를 연주할께 “
그 순간 내인생이 영원히 변하게 되었다. 비록  나는 전에 베이스를 연주해본적은 없었지만 곧 나는 그 악기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곡을 연주할뿐아니라 필인이나 당시 우리가 “runs”라고 불렀던 것을 추가하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우리밴드의 연주에 내려오시지 않으시면서 “ 누가 베이스 연주하는거야.. 누구야 ?” 라고 소리치시기만 하셨다. 
나인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는 베이스 연주자가 되어야해” 나는 말했다. “나도 알아요” 
드러머로서 나의 날은 끝난것이다.

나의 첫번째 연주후 3주 그리고, 거의 3달동안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어떤 베이스연주자보다도 바빴다.
저녁에는 펑크를 연주했고, 다음날엔 레코딩을 했다. 다음날 저녁에는 재즈연주를 했고 그 다음날에는 비밥쿼텟에서 연주를 했다.
 
다음의 나의 행보는 보스톤에 있는 Berklee College of Music 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여름이 끝날무렵 나는 원하던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미 해군에 가서 4년간 해군밴드에서 연주한후 버클리로 가리고 결정했다.

해군에 지원했을 때 의사는 나의 가슴에 청진기를 댔고, 그는 즉시 나의 지원서게 X 표시를 했다.
나는 천식을 않고 있었고 어떤 종류의 육군지원에도 실격이었다.
낙담하여 집에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버클리에서 받아준다는 편지를 받았다. (아마도 장학금을 준다는 의미인듯)
내 생각에 나는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해주기 위해 계단을 날랐던 것 같다.
이틀후 나는 버클리에 갔다.

버클리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있어 가장크게 성장한 시기중 하나였다.
그때의 동기생들은 Branford Marsalis, Jeff "Tain" Watts, Kevin Eubanks, Greg Osby, 
Wallace Roney, Cindy Blackman, Terri Lynne Carrington, 
Stu Hamm, Steve Vai, Mark Ledford, Tommy Campbell, Rachelle Ferrell, Wallace Roney, 
 Donald Harrison  을 포함한 우리시대의 성공적인 연주자들이다.

버클리시절 한 친구가 나에게 뉴욕에 있는 한 녀석을 위해 전화를 통해 연주를 부탁했다.
그 녀석은 drummer Poogie Bell 로 밝혀졌다.
버클리의 2년째 ,  Poogie 는 남아프리카의 트럼펫연주자 Hugh( Masakela's band )와 함게 보스톤에 왔다.
Hugh 는 새로운 베이스 연주자를 찾고 있었고 Poogie 는 나를 추천했다.
나는 테이프와 카세트플레어어를 가지고 그들의 연주장소에 갔다.
Hugh 는 음악을 듣고서 바로 나를 선택했다.

한주후 나는 짐을싸서 뉴욕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100$를 가지고 거주할 곳이 없는 뉴욕으로 간다는 것은 미친짓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믿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도시안의 어떤 베이시스트만큼이나 바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옳았다.
처음 1년 나는 50여 레코딩 연주를 한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꿈에도 그리던 꽤 유명한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우상이었던 Sonny Rollins, Miriam Makeba, Lenny White, Hamiet Bluiet, 
Olu Dara, Don Alias, Larry Coryell,Sadao Watanabe, 
Michael Urbaniak and Ursula Dudziak 의 연주와 레코딩을 하였다.
젊은 시절 나는 Tom Browne, Bobby Broom, Kenny Kirkland, Bernard Wright, 
Mike Stern, Dennis Chambers, Poogie Bell, Kevin Eubanks, and many others 등 많은 이들과 연주하고 레코딩을 하였다.
한가지 사실은 뉴욕시는 그당시 매우 활기찬 도시였다. 
정말 좋은 시기였다.

뉴욕에서의 1년후  나는 남아프리카의 보컬인  Miriam Makeba 와 함께 2번 연주를 하였다.
드럼에있어서 Omar Hakim 은 환상적인 연주자이다.  
1년전 Omra 와 나는 guitarist Bobby Broom's record의 레코딩 "Clean Sweep". 에 참여해서 만난적이 있었다.
이번이 우리가 같이 연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리허설 때 리듬섹션에서 우리가 연주하는 것을 보고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것은 가볍고 활력있으며 자유롭게 극도로 타이트하며 파워풀하며 원색적인 연주였다.

두번째 연주후 그가 말했다. 
“ 나는 Weather Report 에서 연주하고 있다. Weather Report  에서 현재 새로운 베이스 연주자를 찾고 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나는 16살때부터 모두에게 말해왔었다. “ 나는 Jaco 다음으로 Weather Report 의 연주자가 될거야 “
이것은 운명이었다.

Omar 는 나에게 조 자비눌(Joe Zawinul) 의 주소를 주며 연주테잎을 그에게 보내라고 말했다.
나는 다양한 연주음악을 담아서 조 자비눌에게 보냈다.
( 보낸 곡은 Marvin Gaye 의 앨범 “What's Going On” 를 베이스 멜로디와 스캇베이스 솔로로  연주한것,
비틀즈의 멀티트랙버젼인 “She's Leaving Home” 이곡은 자코를 처음만났을 때 연주한 곡,
내가 곡을 쓴 펑키하고 그루브한 사운드의 곡과 Giant Steps 의 라이브 솔로부분 이었다. )
Omar 가 조 자비눌 에게 나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조가 나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선택해야할 연주자가 너라는걸.. 난 느낄 수 있다.”

일주일 후 나는 매니지먼트사로부터 "Welcome to Weather Report."라는 연락을 받았다.
드러머인 Omar 와 나는 완벽한 웨더리포트의 리듬섹션을 만들며 밴드역사에 있어서 베이스와 드럼연주로 명확한 자리매김을 하였다. 
우리는 밴드가 할수 있는 가장 영감있는 음악을 녹음하였다.
이것은 기나긴 영감있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Weather Report , Michael Brecker, to LL Cool J, to Mary J Blige  
와 함께 1천번 이상의 레코딩에서 연주를 하였다.
나는 Force MD's, Alex Bugnon, George Howard and Missing Links 같은 음악인들의 작곡과 프로서를 하였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에 퓨전재즈 그룹으로 슈퍼그룹인 Steps Ahead 에 새루움을 더하기 위해 
어커스틱한 재즈 밴드로부터 펑키한 일렉트익연주에 Mike Mainieri, Michael Brecker, 
Peter Erskine and Chuck Loeb 와 함께 하게 되었다.

1989년 나는 나의 첫번째 앨범으로 베이스연주자에 의한 음반중에는 가장 중요한 음반중 하나로 생각하는  "Bottom's Up" 을 발매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녹음에 그루브들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 즉흥연주로 발매된 첫번째 앨범이었다. 
(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른 꽤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뒤에서 연주한 것을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

사람들은 마침내 나의 작곡, 편곡, 키보드연주, 드럼과 노래를 들을수 있었다.
나는 백업 베이스연주자에서 좀더나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뉴욕에서 활동했던것보다 더 오랫동안 활동을 해야한다는 느낌을 가졌다.
90년대 중반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큰 경험중 하나였던 팝 슈퍼스트 마돈나의 투어에 함께했다.

90년대에 나는 앨범 레코딩과 여러 아티스트의 투어 ( 유럽과 일본이 대부분이었더 )에 참여했다.
1997년 나는 나의 멘토였던 조 자비눌의 그룹인 The Zawinul Syndicate 그룹에 다시 조인하였다.
조자비눌은 나에게 음악적으로 한 사람으로 일찍이 만난 사람중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사람중 하나이다. 
나는 그의 밴드에 3년반동안 함께하였다.

1999년 나는 ESC 레코드와 계약했다.
나의 첫번째 ESC 발매작  “Lowblow” 는 이후에는 없을 나에게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나는 Zawinul Syndicate 를 떠날수 있었고 나의 솔로 작업에 집중할수 있었다.
나는 꾸준하게 나의 밴드와 투어를 한다.
나의 밴드는 Kenny Garrett, Dennis Chambers, Bennie Maupin, Poogie Bell, Jim Beard, Patrice Rushen, 
David Gilmore, David Fuiczynsky, Scott Peaker, Rayford Griffin and Nick Smith 를 포함하고 있다.

2002년 나의 두번째 CD "That's Right" 를 발매했다.
나는 Larry Coryell and Lenny White 와 함께 band CBW 를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좋아하던 밴드들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모두 공동 리더이다. 베이스연주를 모르는 누군가가 작곡한 베이스 라인 대신에 나는 즉흥연주를 한다.
 “Coryell Bailey White” 는 "Electric" and "Traffic" 두개의 앨범을 가지고 있다.
둘다 리허설없이 즉흥적으로 작업된것이다.
CBW 밴드는 투어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발전시켰다. 
만일 당신이 우리의 라이브를 본다면 당신은 우리의 최고의 연주를 보게 될것이다.  
우리는 즉흥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온라인에 발표할 새로운 앨범을 작업중이다. 
정확한 일자는 말할수 없지만 최고의 녹음이 될거라는 말을 할수 있다.
나는 항상 연습하고, 곡을 쓰고 , 작업을 한다. 
victorbailey.com 을 통하여 당신은 나와 계속적으로 교류를 할 수 있다.
C-YA!

가끔 웹사이트를 번역하다보면 이해가 안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나의 영어실력의 부족함과 그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일겁니다.
잘못된 정보가 무섭기는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대략 정보를 얻으시고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역출처 From http://www.victorbailey.com

2009.02.25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