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ass History  


1. 더블 베이스
2. 펜더사의 초창기 베이스기타
a. 최초의 솔리드 바디 기타(Solid Body Guitar)
b. 최초의 일렉 베이스기타.
c.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d. 최초의 Fretted Bass Guitar?
e. 레오 펜더 그리고 프리시젼 베이스(Precision Bass)
f. Fender's Precision Bass
g. Precision Bass 의 뜻은?
h. 스케일(Scale: 넛[Nut]으로부터 12프렛까지의 길이 곱하기 2)의 미스테리...왜 34인치인가?
i. 최초의 펜더 베이스 연주자
j. 상업적 판매의 시작
k. 펜더 베이스의 새 디자인
j. 펜더의 첫 재즈베이스


   A.   History
        1950년대 초기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Fender 기타 회사에서 세계최초의 솔리드 바디(Solid Body: 통키타와는 달리 속이 비어있지 않음)로 만든 일렉 베이스 기타를 소개하였으며, 이것은 곧 대중음악 사운드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은 것이였다.  
        특히 일련의 악기들 즉,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드럼은 팝 음악에 있어서 심장과도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그 중 베이스기타는 현대에 이르도록 약 40여년간 대중 음악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오고 있다. 따라서, 의심할여지 없이 일렉 베이스기타는 금세기에 출현한 악기들 중에 가장 중요한 악기로서 평가되고 있다.
...Those who were not sure if Leo Fender was crazy when he broght out the solidbody guitar were darn sure he was crazy when he came up with an electric bass. They were convinced that a person would have to be out of their mind to play that thing....Fender Associate Forrest White recalls the 1950s.
...레오 펜더가 솔리드 바디로 된 일렉 기타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혹시 정신나간 것이 아닐까?" 라고 의아했던 사람들은, 다음해에 레오 펜더가 솔리드 바디로된 일렉 베이스를 만들어내자, 결국 레오 펜더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고 믿었다. 또한 그들은, 그 누구도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그딴 기타들을 칠 리가 없다고 장담했다...
 
1. 더블 베이스

  더블 베이스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약 1500년초 유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더블 베이스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바이올린족(바이올린 스타일)의 악기들 중에서 가장 저음을 내고, 가장 큰 악기였으며, 18세기에와서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저음을 담당하면서 그 역할이 크게 부각 되기시작하였다.
        한편, 1920년 미국 재즈 음악계는 튜바(Tuba)로 베이스음을 내던것을  더블 베이스로 대체하면서 급속하게 대중 음악사이로 더블 베이스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블 베이스는 소리가 작고 울림(Sustain)이 적었기 때문에 많은 베이시스트들은 더 소리가 크며 더 울림이 긴 베이스 기타를 갈망하고 있었다(1940년대에 더블 베이스를 속어로 뭐라고 불렀는지 아는가? "Dog House"...개집,이유는 너무 커서.)

2. 펜더사의 초창기 베이스기타.
   a. 최초의 솔리드 바디 기타(Solid Body Guitar)
                미국 L.A.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Fender전기 및 악기취급 회사는, 1950년에 세계최초로 솔리드 바디의 텔레캐스더(Telecaster) 일렉 기타를 선보였다. 그리고 1951년도에 솔리드 바디의 일렉 베이스를 선보였다. 일렉 베이스는 Telecaster 기타와 비슷하게 디자인 되었으며, 다른점은 넥(Neck)이 좀더 길고, 줄이 4현만 걸려있었다는 점이였다.  그리고 1960년대에 와서, 펜더사의 일렉 베이스기타는 모든 베이스기타의 표준 모델로 정착되었다 (현제에 이르기까지도 모든 기타의 95%이상이 펜더디자인에서 파생되고 있다. 그러나 몇몇 회사들: Conklin, Warrick, TUNE...등은 완전히 탈피하여 보다나은 현대적인 디자인과 더불어 거의 완벽한 밸런스를 추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Conklin 7string Bill Dickens Signature Model w/ customer design -Conklin 과 구매자가 서로의논하여 기존 모델을 새롭게 리 모델링함-을 구입해서 처음 어깨에 걸어보았을 때 사진으로만 보고 생각하던 것보다 밸런스가 훨씬 좋고 뛰어나서 매우 놀랬던적이 있었다.)

b. 최초의 일렉 베이스기타.
         사실 알고보면, 일렉 베이스(전기를 사용한 베이스)의 개념에 있어서는 레오 펜더가 첫 발명가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면 1920년도에 로이드 로어(Lloyd Loar) 라고 하는, 깁슨사의 만돌린 제조(Gibson Mandolin-Guitar)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사람이 더블 베이스보다 통을 좁게만든 일렉 더블 베이스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1930년도에는 그 유명한 릭켄버커(Rickenbacker) 기타 회사에서 막대기처럼 얇고 긴 일렉 Upright Bas

s Guitar를 만들어 냈으며, 같은연도에 시카고 리걸(Regal of Chicago)사 에서는 마치 커다란 통키타처럼 생긴 일렉 더블 베이스를 개발해냈다. 하지만 이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제품을 생산할 이유가 없었고, 그 당시 일렉 베이스를 사용할만한 마땅한 앰프와 스피커도 잘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레오 펜더 기타 회사는 일렉 베이스 기타의 제작 시기를 잘 맞추었고, 상업적인 수완이 대 성공한 행운의 기타 회사였던 것이다.

c.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더블 베이스에 집착한 뉴욕의 베이시스트 에버릿 헐(Everet Hull)은 좀더 현실적인 안목으로 더블 베이스의 단점인 작은 소리와 짧은 울림에 도전하였다.  그는 마이크로폰을 더블 베이스의 페그(Peg) 즉, 더블 베이스를 세우도록 만들어진 쇠 파이프 막대속에 넣어서 그 소리와 울림을 앰프를 통해 크게 증폭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때는 1940년대 였으며, 이 앰프-페그(Amp-Peg)식 증폭 방식은 곧 매우 유명한 앰프회사의 발단이 되었고, 그 회사의 이름이 바로 "Ampeg" 였던것이다.

d. 최초의 Fretted Bass Guitar?
  많은 사람들은, 애초에 프렛이 없는 더블 베이스가 만들어졌고, 따라서 베이스 기타는 원래 프렛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근래에 와서야 일렉 베이스와 함께 프렛이 첨가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였다. 조사해보니, 고대(Ancient)시대부터 다현(Multi-String) 으로된 프렛티드 베이스(Fretted Bass) 가 Bass Lute 와 Theorbo (14-17세기의 현악기) 형태로 존재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근대에 있어서 어떤 기타회사가 가장 먼저 프렛이 있는 베이스기타를 만들었을까?  그 답은, 1928년도에 뿌려진 한 기타회사의 카다로그에 나와있었다. 이 회사는 Gibson 기타 회사인데, 1910년경에 4현 만돌린 스타일의 베이스기타를 소수 제작하면서 프렛을 핑거보드에 올렸던 것이다. 이 만돌린 스타일 베이스 기타는 자그마치 42인치    (현대의 일렉 베이스는 34인치)로서 기존의 더블 베이스처럼 길고, 프렛은 모두 17개만 붙어있었다. 그리고 기타 현의 튜닝은 E-A-D-G 로써 현재와 동일했다. 그리고 좀더 설명을 하자면 이 베이스는 피크로 연주했고, 땅위에 세워놓고 연주했다. 하지만 역시 소리가 작은 관계로 인기의 수명이 길 수는 없었고 가격만 비싸서 그당시에 $150불이나 하였다 (90년 전에 한국돈으로 15만원이면 큰돈).

e. 레오 펜더 그리고 프리시젼 베이스(Precision Bass)
        레오 펜더는 남가주의(Southern California) 풀러톤과(Fullerton) 애너하임 도시(Anaheim) 중간쯤에서(바로 저자가 살고 있는곳...기분 Cap!) 1909년도에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음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오렌지 농장의 농부였고, 사실 레오 또한 한 회계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레오는 전기 기기 즉 라디오, PA 앰프등에 관심이 많았다. 한번은 TV 다큐멘타리에서 레오 펜더의 생애를 보았는데, 역시 지극히도 평범한 할아버지모습에, 지극히 평범한 나무조각을 깍은 것 같은 원형 기타(Prototype)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돈주고 사래도 않 살것같은 일렉 기타를 만지작 거리는 레오...일렉 베이스 기타의 아버지.  저자가 L.A. 허리우드에(음악 학교로 유명한 MI [Music Institute]학교 바로 옆) 소재하고 있는 그 유명한 기타 센터(Guitar Center)에 가서, 레오 펜더의 초기 일렉 베이스 모델을 보았다. 그 가격은 쉽게 수천만원을 넘고 있었다...
        아뭏튼 이렇게 전기 기기들과 PA시스템에 관심이 있었던고로, 레오는 근처

 음악인들의 앰프를 고쳐주면서 유대 관계를 갖게 되었고 1930년에 펜더 전파사를 차렸다(Fender Radio Service;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도 나 어린시절 남양 전파사를 차렸다...나는 전파사집 아들로 아주 유명한 시절을 보냈다. 우리집 밧데리와 전구다마는 다 내꺼였다). 게다가 레오는 음악 레코드와 악보등도 판매한고로 음악인들과 빈번한 교류가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독 카프만(Doc' Kauffman) 이라는 기타리스트가 레오와 뜻을 모아서 기타앰프 및 기타 회사를 차렸다 (Kauffman and Fender Co. In 1945).  그런데 이 레오 펜더는 재정에 너무도 소심하고(회계사였던 만큼), 일에 쉬지않고 매달리는 성격이라 이에 질려버린 기타리스트 Kauffman은 다음해 2월에 떠나고 1946년에 레오는 독자적인 펜더 전자악기회사(Fender Electronic Instrument Co.)를 설립했다. 그리고 1951년 10월에 기어코 솔리드 바디로된 Fender Precision Bass가  탄생된 것이다.

f. Fender's Precision Bass
  레오 펜더의 프리시젼 베이스는 20개의 프렛을 갖고 있으며, 단풍나무(Maple) 와 보울티드 넥(Bolted neck-볼트로써 기타의 넥과 바디를 연결한 것; Neck Through: 기타의 넥이 바디의 끝까지 하나로 된것)이였다. 색깔은 연한 노랑색이고, 바디 나무는 애쉬(Ash)를 사용했다.  그리고 피크 가드(Pick Guard)는 검은색 플라스틱이며, 손가락 걸이(Finger-Rest)가 E현 바로 위에 붙어있었고, 픽업(Pickups)은 Single-Coil Pickup 이였다. 그리고 전형적인 크롬 판이 볼륨과 톤 컨트롤 밑에 깔려있었고, 크롬 커버가 픽업위와 브리지(Bridge)위를 덮고있으며, 4현은 각각 바디의 브리지를 관통하여 뒤쪽에 고정되어 소리의 울림을 향상시켰다.  비로서, 현대 일렉 베이스기타의 모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니 이때는 1953년 3월이였다.

g. Precision Bass 의 뜻은?
  저자가 처음 베이스를 배울때에 모시던 선생님은 74년형 펜더 Precision Bass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로 집으로 달려가서 영어사전을 펴고 Precision 의 뜻을 찿아보았다. 뜻은 정확, 정밀한 이였다.  그런데 이 뜻이 왜 베이스 기타에 쓰였을까? 이 질문은 거의 반 십년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유명하다는 베이시스트나 기타 센터 매니져나 그 누구도 이유룰 알지 못하였다. 여러분은 왜 레오 펜더가 첫 일렉 베이스의 이름을 Precision Bass 라고 지었는지 아시는가?  오늘날에 레오 펜더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너무 늦었다. 그의 비석은 나에게 대답을 해줄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950년대에 펜더기타의 납품을 담당하던 레오의 친구분을 연결 할 수 있었다. 이름은 돈 랜들(Don Randall)이였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이 모든 레오의 기타들의 이름을 지었으며 오직 첫 베이스, Precision Bass 만 레오가 이름을 지었다고한다. 그가 회상하기를, "레오와 나는 첫 번째의 일렉 베이스를 앞에 놓고 이름 때문에 고민을 했지요..., 레오는 나에게 그 베이스 기타의 프렛의 위치가 참 신비하게도 정확히 놓아졌다고 말했지요..., 아시다시피 몇백분의 일의 오차도 없이 프렛을 정확한 음의 위치에 꽂아놓는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힘든일이였지요.... 레오는 이 새 베이스가 얼마나 정교하게 프렛월크(Fret Work- 프렛을 얹는 작업)가 되었는지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자랑하면서, 이 베이스기타를 정확한 베이스(Precision Bass)라고 부르리라... 라고 외쳤지요.
        한편, 펜더기타는 그당시 기타 잡지들을 타고 세상으로 선전되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Fender Bass and

Amplifier Replace Old Style in 1/6 Size". "THe Precision four -string bass is a considerable departure from the old style standard bass in that it is only one-sixth the standard size and is played in the same position as a guitar, supported from the neck...the neck is slender and fretted, which enables considerable ease and comfort for the player..." ...The Music Trades magazine in 1952, April.
...펜더 베이스와 앰프는 구식의 더블베이스에 단지 6분지 1의 작은 사이즈며, 이것은 상당히 고려할만한 새 베이스로의 전환점인 것이다. 그리고 펜더 베이스는 일렉 기타와도 같은 포지션으로 연주가 가능하고, 넥 디자인은 연주하기에 아주 편하도록 프렛이 박혀있고 미끈하게 잘 빠져있다...

 h. 스케일(Scale: 넛[Nut]으로부터 12프렛까지의 길이 곱하기 2)의 미스테리...왜 34인치인가?
        저자가 베이스기타를 연구하면서 정말로 궁금했던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스케일에 관한 것이였다. 레오 펜더가 만든 첫 일렉 베이스는 34인치였고, 이것은 기존의 더블베이스보다 8인치나 작고, 일렉 기타보다는 9인치나 긴 것이였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일렉 베이스의 스케일을 34인치로 만들었을까?  이 미스테리에 관한 답변은 레오 펜더가 임종할때까지(1991), 초기 1948년도부터 함께 일한 조지 풀러톤(George Fullerton)에게서 들을수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여러 가지 실험을 했소. 처음에는 30인치, 32인치로 베이스 기타를 만들어 보았지. 그런데 이 베이스들은 그다지 베이스다운 울림을 갖지 못하였소. 그래서 그다음엔 아주 길게 36인치 스케일로 만들어 보았지. 아 그랬더니, 프렛 간격이 너무 넓어져서 베이스를 치려면 손이 큰사람만 연주가 가능했지. 이건 비 실리적이였소...
         그당시 이 베이스 제작팀의 직원들은 과학과 물리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일일이 베이스를 만들고 실험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베이스의 소리와 울림 그리고 연주의 편이성을 고려할 때 결국 34인치 스케일이라는 답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새 베이스에 연결할 마땅한 베이스 줄이 없었다는 것이였다.  따라서, 일렉 베이스의 줄을 개발하기위해 다시한번 고전 분투할 수 밖엔 없었다고 Randall은 회상했다.
                레오 펜더와 그 일행은 처음으로 일렉기타와 베이스기타의 디자인에 혼(Horn) 과 딮 컷어웨이(Deep Cut-Away) - 기타를 거는 윗부분 및 기타를 무릎에 놓는 부분-를 도입하여 현대에 이르기 까지 기타의 무게 중심(Balance)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i. 최초의 펜더 베이스 연주자
                과연, 그 누가 레오 펜더의 첫 번째 프리시젼 베이스를 연주했을까?  물론 레오 펜더가 만들었으니 그가 첫 연주자였겠지만, 사실상의 첫 연주자는 로이 존슨(Roy Johnson) 이며 그는 리오넬 햄톤(Lionel Hampton)이라는 밴드의 연주자였다. 그는 펜더의 프리시젼 베이스가 태어난지 9개월도 안되어서 연주하기 시작한 것 이였다. 이 Hampton 밴드가 뜨자 음악계는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 밴드는 참 미스테리다, 분명히 더블 베이스 소리가 나는데 더블 베이스는 온데 간데 없고 4줄짜리 기타 비슷한 것에서 더블 베이스 소리가 난다...!!"

j. 상업적 판매의 시작
    케이(Kay)라는 값싸고 경제적인 기타제작 회사와, 1952년에 펜더 기타회사는 대량생산의 계약을 맺었다. 그때가지만해도 펜더사의 솔리드 바디 기타들은 부정적인 평판을 많이 얻고 있었다. 그러나 용기없는자는 미인을 얻을수 없다고, 용감한 회사 Kay Company는 Fender와의 계약으로 나중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1952년에 K-162라는 이름으로 일렉 베이스를 만들었으며 펜더의 프리시젼과는 다른 모델이였다.

k. 펜더 베이스의 새 디자인
저자가 늘 궁금해 하던 것 중의 하나는 왜 고전모델(Old Model)의 펜더 베이스는 헤드 디자인이 다른가? 하는 것이였다.  나중에 제법 과학적인 이유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1957년에 펜더사는 새로운 픽업, 더 커다란 헤드(Headstock), 새로운 픽 가드(Pick Guard Plate)를 장착했다. 이것은 펜더 프리시젼 베이스의 변치않을 마지막 새 디자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헤드를 크게 만들었을까?  이유는, 베이스기타가 나무로 만들어진 특성상 현의 장력(Tension)과 브리지(Bridge) 그리고 긴 넥(WoodenNeck)등이 어우러저 핑거보드의 어느 부분에서는 나무가 소리를 흡수하는 사점(Dead Spot: 소리가 흡수되어 잘 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를 보완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진행되오고 있으며 예를 들어 Moses Graphite, Steinberger, Modulus Graphite, Zon 기타등에서는 나무가 아닌 Graphite 소재로 기타넥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기타 톤의 색깔(Timbre)문제로 말이 많다...본서 나중에 다시 상세히 설명하겠다.) 이 있는데, 이것은 주로 펜더 프리시젼 베이스의 제 7번째프렛  G현 위의 지점에서 발생하였다. 일반 사람들은 못느끼지만 민감한 베이시스트들은 불평을 해왔다. 따라서 펜더는 베이스의 헤드를 길고 크게 만듦으로서 어느정도 그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가 시도 (테스트)해본 결과 아무리 유명한 베이스 기타라도 현재까지도 Dead Spot이 아주 없는 (나무소재의) 베이스 기타는 없는 것같다(비록 몇몇 회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베이스가 Dead Spot 이 없다고 자랑하지만, 솔직히 의심 스러운 주장이다).

j. 펜더의 첫 재즈베이스
        펜더는 프리시젼 베이스 외에 두 번째로 새 베이스를 디자인해서 만들었는데 이른바 재즈 베이스 였다(Jazz Bass in 1960, March). 그당시 가격이 279.50달러였는데, 사실 이 재즈 베이스의 개발은 레오 펜더의 아이디어에서 온 것이 아니고, 상업적인 마케팅 전략에서 베이스 기타의 선택의 다양성을 노린 목적에서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 재즈 베이스를 사용하는 베이시스트들이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마커스 밀러는(Marcus Miller) 1977년형 재즈 베이스를, 자코 패스토리우스(Jaco Pastorius)는 1960년과 1962년형 프렛티드, 프렛리스베이스를 사용했다. 지금 저자 앞에는 자코 패스토리우스의 자서전이 펼쳐저 있는데, 누군가가 자코의 1962년형 프렛리스 베이스 기타를  훔쳐가서 그 베이스 기타에 1000불의 현상금을 거는 포스터가 실려있다. 찿지는 못했지만, 지금 그 베이스를 갖고 있는 사람은 수천만원이 넘는 큰 재산을 소유하고있는 셈이다.  
        아뭏튼, 이 재즈 베이스는 기존의 프리시젼 베이스 보다 넛부분이 훨씬 좁아 날렵하며, 픽업을 JJ 스타일로 두 개를 사용하여 톤의 다양성을 추구했으며, Adjustable Bridge(높낮이 및 이동 조절가능한 브리지), Truss-Rod Reinforced Neck, Comfort Contoured Body( 인체 공학적으로 타원형의 바디)등의 장점을 갖고 있었다. ------------------------------------------------------------
        그러나 한가지 펜더의 비밀이 있는데, 프리시젼 베이스는 정식 인가된 1957년 이래 픽업을 두 개로 나눈(Split) 험버킹(Humbucking) 스타일의 픽업을 썼고, 나중에 레오 펜더가 당사의 베이스 픽업이 험버커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숨겨왔음을 기자들에게 고백한 일이 있었다. 이유는 누군가가 먼저 1930년도에 험버커 픽업을 이미 특허제품으로 허가청에 등록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레오 펜더는 곧, 한 단계 더 나은 험버커 픽업을 개발하여 특허을 얻어낼 수 있었다(픽업에 관한 내용은 뒤에 상세히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