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bop 7월호

뮤지션의 악기 이야기

My Old Friend...................Bassist 장응규

20여 년 동안 연주활동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하나의 악기란, 내가 그 악기를 가지고 싶다고 해서 금방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약간의 필연과 인연, 숙명 같은 것이 작용하여 악기와 만나게 되는 길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결혼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결혼 상대자를 골랐다고 쉽게 결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얼마 전 바흐 서거 250주년 기념 음악회때 평균율 반주에 맞추어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아름답게 노래해 준 패둘라(Fadulla)는 내게 연인처럼 느껴지는 악기이다.
다른 뮤지션들처럼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구입할 때부터 마음을 졸이며 만나서 그런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일렉트릭 악기 중에서 제일 아끼는 것은 팬더(Fender) 재즈 베이스이다.
이 악기는 70년대부터 나의 음악생활을 함께 해 온, 오랜 친구같은 존재이다. 확실히 오래된 것일수록 정이 더 많이 가는 법.
어찌 되었든 다시 청록색의 예쁜 패둘라 얘기를 해 보자.

처음 미국 뉴욕에서 이 녀석을 찾기 위해 온 악기점을 다 헤매고 다녔었다.
마크 이건(Mark Egan)이라는 베이시스트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쓰기도 했거니와 플렛리스(Fletless)베이스를 하나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을 패둘라 플렛리스 베이스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아직은 인연이 닿지 않나 보다 하고는 포기했더랬다.
그리고 보스톤에 가게 되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수소문해 본 결과 지금의 패둘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나는 이 기타를 화물칸에 두지 않고 굳이 승객석에 가지고 들어갔다.


비행기의 화물칸은 승객들이 있는 곳과 달리 기압조절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차하면 악기에 무리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플랫리스라고 하는 것은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포지션이 지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림으로는 나와 있지만 정확한 위치를 지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음정을 맞추기가 까다로운 악기인것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많이 사용하는 악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플랫리스를 요구하는 녹음이라던가 이 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선율적인 연주를 할 때는 자주 쓰고 있으며 꽤 애착이 가는 악기이기도 하다.

일렉트릭과 어쿠스틱을 통틀어 내가 제일 아끼는 악기를 꼽으라면 그래도 독일제 엠마뉴엘 비퍼 (Emanuel Wilfer)라는 콘트라베이스를 꼽을 수 있다.
국산 베이스로 연습을 하다가 1988년쯤에 비퍼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너무 좋아서 잠도 못 이룰 정도였다.
지금까지 12년 정도 이 악기로 연주했는데 세월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소리도 좋고 마음을 울리는 깊은 소리를 노래해주는 악기이다.
콘트라베이스라고 하는 것은 원래부터 어쿠스틱 악기이기 때문에 앰프를 연결할 수 있는 리얼리스트 픽업과 언더우드 픽업을 붙여 놓았고
우리나라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어저스트 브릿지로 지판과 현의 사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렇게 아끼는 이 악기와 함께 자동차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다친 것은 하나도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으면서도
밑판이 터져 버린 베이스를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렇게 내 악기를 아끼고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악기 닦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얼마나 악기를 닦지 않았던지 올 댓 재즈(All That Jazz)에서 연주하던 시절 청소하시던 분이 내 악기까지 닦아주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제는 이런 습관을 버리려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Doobop 독자 여러분 중에서도 분명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이 계실 것인데, 악기를 연주한 선배로서 꼭 당부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자기 손으로 악기를 만지고, 닦으며 애정을 쏟아 주어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다른 물건은 만지면 만질수록 낡고 닳아버리기 일쑤이지만, 악기는 만지면 만질수록 깊이를 더한다.